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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

왜 한국에는 C&MA교단이 없었는가?


C&MA 교단의 신학적 입장논문 ›
왜 한국에는 C&MA교단이 없었는가?

한국 성도들님 가운데 흔히 물어 오시는 분이 많은 질문이다. 한국 분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교단이면 무조건 이단이 아닌가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경향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심슨목사의 선교정책 가운 데 중요한 세 가지이다.

첫째, 복음이 전혀 전해지지 않은 잃어버린 영혼 들이 있는 민족/지역에 선교사를 보내는것을 원 칙으로 한다.

둘째, 비록 복음전파가 다 되지 않은 지역이라 해도 이미 타교단이나 선교단체에서 파송한 선교사가 있는 지역은 배제한다.

셋째, 한 나라 한 교단주의이다. The C&MA연관 교단이 그 나라에 있으면 The C&MA란 이름으로 그 나라에서 사역하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연관 교단 혹은 자매교단 명의로 사역한다.

한국은 이 세 가지 원칙이 모두 적용되는 경우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이미 북장로교단, 남장로교단, 감리교단 등에서 이미 선교사를 파송했을 뿐 아 니라, 간접적으로 심슨의 영향을 받아 사중복음을 기치로 내걸고 세워진 성결교가 존재했기 때문에 한국에 별도로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았다.

성결교와 본교단의 관계에 관해 잠시 고찰해 보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3대 교단을 장감성이라 했다. 바로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를 말함이다.

이 가운데 장로교, 감리교는 외국인선교사에 의해 시작했던 반면, 성결교는 처음부터 김상빈, 정빈 두 전도자에 의해 시작했다. 사중복음으로 대변되는 성결교의 뿌리는 C&MA교단의 창설자인 알버트 심슨목사이다.

1894년 심슨 목사가 전한 말씀을 듣고 선교사로 헌신하고 1901년 일본에 건너가 예수교 복음전도회란 간판을 내걸고 성서학원과 복음전도회를 시작했던 챨스 카우만과 1년후 합류한 어니스트 길본 양인은 심슨의 사중복음에 근거한 사역을 시작했다.

1904년 명칭이 동양선교회 (Oriental Mission ary Society) 로 바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 에서 당시 유학생으로 일본에 왔던 김상빈, 정빈이 수학하고 1907년 졸업했다. 이들이 한국에 돌아가서 1910년 조선야소교 동양선교회를 세운 것이 성결교회의 기원이다. 동양선교회의 카우만과 길본 두 선교사는 한국에 성결교회가 세워지는 초기부터 직접, 간접으로 지원을 했다.

지금의 서울신학대학은 1912년 카우만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그 부지를 구매하고 세워서 성결교회가 기성과 예성으로 분리될 때까지 성결교회의 교단신학교 였다.

카우만은 이 때의 과로로 1924년 사망했다. 후에 성결교단은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서 미국 C&MA교단과 접촉하고 한국에서 C&MA 교단을 대표하는 자매교단이 되었고, C&MA선교 의 열매인 Alliance World Fellowship의 일원으로 협력사역을 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에 실제적으로 C&MA Korea로 2018년 4월 8일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C&MA US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또한 AWF (Allinace World Fellowship) 함께 한국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교회는 28여개 소속 선교단체 12곳, 정회원 소속 목사와 선교사는 60여명으로 귀하게 쓰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