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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소개

한국 성결교회 신학과 신앙 뿌리를 찾아서

4중복음 113년의 뿌리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보고해 왔습니다.)
예성 총회장 문정민 목사 자료 요청의 건

제목: 한국성결교회 신학과 신앙 뿌리를 찾아서

한국성결교회는 나카다와 카우만이 일본 동경에서 설립한 동양선교회의 직접 후원과 지원으로 1907년 5월 30일 한국 경성 (염동)에서 설립된 교단이다. 나카다와 카우만 두 사람은 1901년 일본 동경에서 일본인을 전도인으로 양성하여 일본인들에게 전도하고자 동경성서학원과 동경복음전도관을 동시에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1905년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 몇 나라 학생들이 동경성성학원에 입학하자 동양에 순복음을 전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동양선교회라는 선교회를 조직하였다.

한편 전신기사 출신인 카우만은 은혜감리교회에서 신앙을 시작하였고 이후 무디성서학원을 다녔다. 과정을 마치고 감리교회 선교부에 인도선교사로 지원하였으나 아내의 건강상태가 인도 사역 불적합 판정으로 선교사 청원이 거절되자 그동안 만국성결 연맹 넵 목사가 발행하던 선교잡지를 구독해 왔기에 넵이 활동하 는 신시네티 하나님의 성서학원(만국성결연맹)을 찾아가 한동안 함께 하면서 넵 목사로부터 신앙선교 권고를 받고 오랫동안 교제 해 오던 일본인 나카다와 연락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두 사람이 공동 설립한 것이 동경성서학원과 동경복음전도관 이었다.

위의 내용이 현 한국성결교회 역사 기록의 대략이다.

그런데 이번 한국성결교회 113년 다큐 촬영을 위한 투어 중 나약대학을 방문하고 김진태 교수로부터 심프슨의 묘지에서 심프슨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김 교수의 설명 중 두 가지 를 이 글 작성자가 질문하게 되었다.

첫째; 심프슨이 지은 예배당 건물 모습이 현재 한국 서울 무교동 에 있는 건물과 그 형태와 외관이 매우 흡사하다.
둘째; 심프슨이 최초로 사용했다는 Tabernacle이란 용어가 그 무교동 건물 상단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김 교수 역시 깜짝 놀라면서 특히 Tabernacle이란 용어를 한국 에서 사용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고 놀라운 일이라 하였다.

이로 인하여 본인은 두 가지 의문이 일어났다. 하나는 카우만 이(자신의 장인이 유산으로 아내에게 주어진 돈으로 경성 무교동 건물을 건축하였다) 1912년 무교동건물을 지으면서 왜 심프슨 이 지었다는 예배당 건물 모습과 흡사한 건물을 지었을까?... 그렇다면 카우만이 심프슨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거나 씨엠엔에이 에서 얼마간 교제하며 지냈거나 아니면 컨벤션 모임에 참석하면서 신앙적 도전을 받았을 것이다.

건축물은 일정한 설계도가 필요한데 그러한 지료를 제공받을 만큼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로 추론되었다.
두 번째; Tabernacle이란 용어는 심프슨의 독특하고 의미 있는 용어인데 카우만이 예배당을 건축하고 그 단어를 건물에 새겨놓았 다는 것은 심프슨과 일정한 관련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교회. 예배당. 복음전도관 ,,,등등 얼마든지 사용할 용어가 있는데 Tabernacle이란 단어를 건물에 새겨놓았다는 것은 분명히 심프 슨과 구체적인 관계가 있다고 여겨졌다.
카우만이 단순히 일반적인 신앙적 도전이나 감동을 심프슨에게 (집회에서) 받았다고 머나먼 외국 땅에 장인과 아내의 헌신으로 마련된 재정을 가지고 예배당을 건축하고 그 기념적인 건물에 Tabernacle이란 용어를 의미 없이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 이다. 그런고로 카우만은 심프슨 혹은 씨엠엔에이와 분명한 관계(소속?)가 있었다고 추론하기에 확실했다.

C&MA 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내용:

1. C&MA 공식 서류나 관련 발행 잡지등 문헌에 카우만이 함께 했거나 공개적이거나 지속적인 교류를 하였다는 증명 자료가 있는가? 또 행사 참석 명단에 카우만의 이름이 기록된 문헌이 있는가?

* 카우만이 참석했던 행사 사진이 있는지?
* 카우만 부인이나, 그의 장인에 관한 관련 기사. 내용이 있는지?

2. 카우만에게 정기적이건 비정기적이건 재정적인 지원 문헌이 있는가?

3. C&MA 공식 선교잡지에 한국이나 카우만 관련 기사가 있는가?